책과 문장
사는 것이 힘들어도, 생명은 다시 봄을 준비한다 – 박경리 《토지》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살아가는 힘’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일을 겪고도 살아왔을까?” 우리 부모 세대만 돌아봐도 그렇다. 전쟁을 겪고, 가난을 견디고, 가족을 잃고, 고향을 떠나기도 했다. 그런데도 다음 날이면 밥을 짓고 출근을 했다. 힘들다고 인생을 잠시 멈춰놓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박경리의 《토지》를 읽으면 바로 그런 사람들의 얼굴이 보인다. 1969년 연재를 시작해 1994년 완성된…
혼자서는 넘을 수 없는 벽도 있다 -도종환 《담쟁이》가 말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연대
살다 보면 정말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벽을 만날 때가 있다. 사업이 잘되지 않아 통장 잔고가 바닥을 보일 때도 그렇고, 오랫동안 준비한 일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을 때도 그렇다. 가족과의 관계가 꼬여 아무리 말해도 마음이 닿지 않을 때도 있다. 나이가 들수록 몸은 예전 같지 않고, 세상은 나만 빼놓고 빠르게 달려가는…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 -한강 『소년이 온다』를 읽고
가끔 뉴스를 보다가 화면을 얼른 넘겨버릴 때가 있다. 너무 참혹해서 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나는 지금 무엇을 외면하고 있는 걸까’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나면 이 질문이 오래 남는다. 이 소설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시작된다. 중학생 동호는 친구 정대와 함께 시신들이 놓인 상무관에서 일을 돕는다.…
정현종 《방문객》-사람 하나가 온다는 것, 참 어마어마한 일이다
며칠 전 오랜만에 친구 한 명을 만났다.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친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예전보다 주름이 조금 늘었고, 말끝에는 전보다 긴 한숨이 붙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친구가 변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예전의 친구가 그 안에 그대로 들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가 함께 웃었던…
류시화 잠언 시집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읽고
‘그때 왜 그렇게 화를 냈을까?’, ‘그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줄 걸…’ 요즘은 이런 생각이 부쩍 많아졌다. 30대 40대에는 앞만 보고 달리느라 뒤를 돌아볼 틈이 없었는데, 어느 날 문득 멈춰 서면 지나온 길에 아쉬운 장면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온다. 예전에는 가족에게 섭섭한 일이 생기면 ‘내가…
조정래의 『태백산맥』 -우리는 아직도 서로를 적으로 보고 있는가
가끔 뉴스를 보다 보면 이상한 생각이 든다. 같은 나라에 살면서도 우리는 왜 이렇게 서로에게 화가 나 있을까. 보수와 진보, 세대와 세대, 남자와 여자, 지역과 지역. 말 한마디 잘못하면 금세 ‘저쪽 사람’이 된다.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하루에도 몇 번씩 싸운다. 우리에게는 원래부터 이렇게 많은 적이 있었던 것일까. 그러다…
천양희의 시 <밥> -사는 게 힘들수록 밥부터 먹자
하루 종일 별일이 다 있었는데, 막상 집에 돌아오니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날이 있다. 회사에서는 웃는 얼굴로 버텼고, 지하철에서는 휴대폰만 들여다봤다. 집에 와서 신발을 벗는 순간, 마음속에서 작은 한숨 하나가 툭 떨어진다. “아, 오늘도 참 길었다.” 그럴 때 냉장고 문을 열어본다. 먹을 게 별로 없다. 그래도 밥솥을 열어보니 다행히…
함석헌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카톡 친구 천 명보다 끝까지 내 편인 한 사람
늦은 밤,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켭니다. 카톡 친구 목록을 쭉 내리다 보면 그 수가 수백을 훌쩍 넘어가는데, 정착 마음은 헛헛하다. “나 오늘 좀 힘들어.” “그냥 네 목소리가 듣고 싶었어.” “별 일은 아닌데, 그냥 이야 좀 하고 싶어.” 이렇게 체면 차리지 않고 전화를 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
조세희《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퇴근길 지하철 창밖으로 반짝이는 아파트 불빛을 바라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저 불빛 아래 사는 사람들은 모두 행복할까?’ 화려한 네온사인과 구름을 뚫을 듯 솟아오른 초고층 아파트의 불빛들을 보고 있노라면 문득 가슴 한구석이 헛헛해질 때가 있다. 전 세계가 경탄한다는 경제 성장과 눈부신 디지털 혁명의 한복판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어째서…
정지아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우리에게 묻는 것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게 된 딸이 있다. 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일지》에서 딸 아리는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며 뜻밖의 사람들을 만난다. 살아 있을 때는 몰랐던 아버지의 이야기가 조문객들의 입을 통해 하나씩 흘러나온다. 내가 알고 있던 아버지와 남들이 알고 있던 아버지가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장례식장은 슬픔의 공간이면서 동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