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드라마
지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인생 특강이 아니다-《닥터 슬럼프》가 건네는, 함께 쉬어도 괜찮다는 위로
아내가 소파에 앉아 말했다. “오늘은 아무것도 하기 싫어.” 나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그러니까 운동도 좀 하고, 너무 무리하지 말고…….” 아내가 눈을 감았다. 쉬려고 앉았는데 남편의 생활 개선 설명회가 시작된 것이다. 나는 걱정해서 한 말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걱정하는 사람치고는 상대의 이야기를 참 적게 들었다. 나도 그런 날이 있었다. 퇴근하고 현관문을…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가 말하는 어른의 도리
아이가 “요즘 좀 힘들어”라고 하면 내 머릿속에서는 긴급 대책회의가 열린다.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마련하고, 앞으로의 계획까지 세운다. 아이는 한마디 했는데 나는 벌써 인생 컨설팅 업체를 차린 셈이다. 물론 고객 만족도는 별개이다. “그러니까 아빠 말은…….” 이 말이 나오면 아이의 표정이 달라진다. 아, 오늘도 상담이 시작되는구나 하는 얼굴이다. 정작 내…
내 마음에도 무인도가 하나 있다 -드라마《무인도의 디바》가 가르쳐준, 사람을 다시 살게 하는 응원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는데 왜 이렇게 혼자인 것 같을까?’ 아침부터 사람들 사이에 섞여 출근하고, 하루 종일 전화와 메시지를 주고받고, 저녁이면 가족과 밥을 먹는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외로움 하나쯤은 남아 있다.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는 작은 무인도가 하나씩 있는지도 모른다. 《무인도의 디바》의…
사랑이 식은 게 아니라 말의 온도가 식은 것이다 -드라마 《눈물의 여왕》이 말하는 부부의 지혜
부부싸움을 하다 보면 참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처음에는 “왜 또 늦었어?” 정도로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당신은 원래 그래”가 되고 만다. 치약 짜는 법, 설거지 방식, 말투 하나가 어느새 서로의 인격을 판단하는 싸움으로 커진다. 드라마 《눈물의 여왕》의 백현우와 홍해인도 그랬다.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어느 순간 서로에게 서운함이 쌓이고, 같은 집에 살면서도 마음의…
꿈을 믿어주는 사람, 마음이 머무는 역 -영화 《기적》이 우리에게 묻는 것
살다 보면 남들은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유난히 매달리는 사람이 있다. “그게 그렇게 중요해.” 옆에서 보면 답답하기도 하다. 적당히 포기하면 편하게 살 수 있는데, 왜 저렇게까지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런 고집 하나가 누군가의 삶을 바꾸기도 한다. 영화 《기적》의 준경이 그렇다. 영화의 배경은 1980년대 시골 마을이다.…
드라마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내가 조금 손해 봐도 괜찮은 사람들
요즘 나는 병원에 가면 의사의 얼굴을 보게 된다. “저 사람은 오늘 몇 끼나 먹었을까?”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에게 이런 걱정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을 보다 보면 자꾸 그런 생각이 든다. 2025년 tvN에서 방송된 이 드라마는 종로 율제병원 산부인과 레지던트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아직은 서툴고 흔들리는 청춘들이 의사로, 그리고 어른으로…
부끄러움을 아는 청년, 윤동주 – 영화《동주》가 묻는 양심과 삶의 방향
가끔 거울을 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는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 나이가 들수록 이런 질문은 더 어려워진다. 젊을 때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제법 자신 있게 말했는데, 막상 세상을 살아보니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먹고사는 일도 만만치 않고, 직장에서는 눈치를 봐야 하고, 가족을 책임지다 보면 ‘옳은 것’보다…
다 하지 못한 말들의 무게-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가 건네는 위로
제주의 바람은 늘 거세게 불었다. 그 바람 속에서 애순과 관식은 자라났고, 사랑을 배웠고, 부모가 되었다. 열여덜 살 소녀가 엄마를 잃고 곧바로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야 했던 시절, 그 시대에는 마음을 다스릴 틈도, 감정을 어루만질 여유도 없었다. 밥을 짓고 자식을 먹이고 하루를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벅찬 삶이었다. 그러니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고맙다는 말…
영화 <변호인>- 타인의 아픔이 마음에 걸리는 사람
세상살이가 팍팍해질수록 우리는 시야를 좁히고 내 밥그릇 하나 건사하기에 바빠진다. 내 통장 잔고도 걱정이고, 자식들 학원비도 걱정이고, 건강검진 결과표에 찍힌 숫자도 무섭다. 남의 인생까지 걱정할 여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마음이 불편해질 때가 있다. 영화<변호인>의 송우석이 그랬다. 처음의 그는 아주 현실적인 사람이다. 돈이 되는…
드라마<나의 해방일지>가 말하는 진정한 해방
퇴근 후 멍하니 앉아 창밖을 바라보다가 문든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 오늘 하루 뭐 했지?’ 회사에 갔다가 돌아왔고, 밥을 먹었고, 사람들과 몇 마디 말을 나눴다. 특별히 나쁜 일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은 텅 비어 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어른의 삶을 버텨내지만, 속으로는 조금씩 곪아 터지고 외로운 것이…